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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사람, 군산이야기) 꽃게장 명인 김철호·박명옥 부부

    채명룡

    • 2019.05.08 10:52:29

    (군산사람, 군산이야기) 꽃게장 명인 김철호·박명옥 부부

    (군산사람, 군산이야기) 꽃게장 명인 김철호·박명옥 부부

     

    - 한국화의 기법, 꽃게장에 담다
    - 꽃게장을 지키는 나는 ‘어민의 자식’

     부부는 닮는다는데, 꽃게장 명인 김철호·박명옥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대한민국 유일의 특허를 갖고 있는 신지식인 (유)내고향시푸드 김철호 대표와 그 옆에서 꽃게장 직영점을 운영하는 박명옥 대표. 어머니가 담가주었던 꽃게장을 재현하고 여기에 자신만의 비법을 보태 방부제 없는 한방 꽃게장으로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어 온 외길 꽃게장 부부이다. 
     부리부리 안테나를 돌리는 꽃게의 신중한 처신, 어머니 손맛을 닮은 자상함, 자연숙성 양조간장에 송진가루, 정향, 당귀 등 한방재료의 깔끔함이 묻어나는 게 (유)내고향시푸드와 계곡가든 꽃게장이다.
     김 대표를 도우러 딸 보미씨가 부사장으로 들어왔고, 메니지먼트 사업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 성주씨가 함께하면 3대에 걸친 꽃게장 사업이 군산 개정면 금강로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공장과 판매장이 들어선 개정면 아동리 3300여평의 앞마당에서 건너편 야트막한 산을 바라보면서 김 대표는 “풍수적으로 꽃게장의 모습을 닮은 게 바로 여기”라고 말했다. 꽃게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었다.
     짜지 않은 꽃게장으로 전국민의 식탁에 오르는 ‘계곡가든 꽃게장’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아버지(김동순)는 어부였고 어머니(문복례)는 조기 등 생선과 함께 잡힌 꽃게를 장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였다. 어머니의 꽃게장은 맛났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기이어서인지 짜다는 게 흠이었다.
     “저는 사업으로 꽃게장을 만들면서  ‘짜고, 비리고, 보기 싫은’ 3가지 단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해답을 찾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요.” 
     오늘의 김철호, 박명옥 부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가서 나름의 가치를 이룬 성공한 사업가이다. 그러난 그 길은 정말 힘들었으며, ‘지금 한다, 지금 당장한다’는 김 대표의 좌우명처럼 절박한 시기를 보내고 나서야 환한 얼굴을 내밀었다.

     1990년 7월 조립식으로 30평을 지었고 방갈로를 몇 동 만들었다. 공사를 하느라 빌린 돈을 갚느라 하루도 쉬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와 김 대표는 이제 쉬는 게 익숙하지 않다. 내 집의 맛을 찾아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게 아내와 함께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하루라도 쉬면 그 빚을 갚지 못하니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땐 제가 직접 고기를 썰고 꽃게장을 담가 서비스로 내놓았지요. 비유가 맞는지 모르지만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갈비보다 된장찌개와 꽃게장을 드시러 오는 분들이 훨씬 많았어요. 고생길에 접어 든거지요.”
     장사가 잘되고 나서도 애써서 찾아 온 손님들을 그냥 보내기 싫어서 문을 열어둔 게 이제는 언제든 문을 여는 집이라는  ‘약속’으로 굳어졌다.
     3년 남짓 갈비집을 하고부터 서비스로 내놓던 꽃게장이 엄청 귀하신 몸이 되었고, 꽃게 값이 올라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음식점을 꽃게장 전문으로 바꾸었고, 벌써 30년이 지났다. 

     김 대표는 공짜로 주는 건 돈을 받는 것보다 ‘대접받았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성의를 다해야 고객이 감동한다고 생각했다. 돈이 아깝지 않게 잘 먹었다는 느낌을 가질 때 고객은 다시 방문하기에 그에 걸 맞는 맛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봤다.
     꽃게장을 무료로 내놓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갈비 1인분이 1만원이었을 때 밑반찬으로 한 마리에 5천원 정도하는 꽃게장을 내놓은 것이다. 90년대에는 꽃게 값이 kg당 만원 정도였다. 나중에 값이 오르고 힘들었을 때에도 부담스러웠지만 처음처럼 ‘공짜를 먹더라도 대접받았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자’는 원칙에 맞게 계속 무료 제공했다.
     “갈비집을 연지 3년 6개월 정도가 지났고, 꽃게장 맛을 찾아오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말하자면 주객이 전도된 셈이지요. 갈비가 최고로 흥행하던 때에 과감하게 꽃게장 전문으로 바꿨습니다. 정말 장사가 잘됐지요.” 
     김 대표는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장사도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해 손님들을 대하고 그 다음의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생각이다.

     김 대표는 조금 만 더 사업을 하고 여생을 그림 그리면서 살 생각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그림은 그의 인생 항로에 등대와 같았다. 제일고 최초의 문예부장이면서 미술부장이었던 그는 국전에서 대상을 타고 전업 작가를 하면서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 꿈을 꾸었기에 수협 다니면서도 1985년부터 몇 년 동안 전국 직장인 미술대회에 나가 연속으로 상을 받을 정도의 솜씨를 갖췄고, 계속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림을 향한 애정은 꽃게장 사업에서도 이어졌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꽃게장의 맛은 어디다 비교할 바가 아니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바닷가 사람이 아닌 분들에게는 조금 짜다는 점이 ‘옥의 티’였다. 거무스레한 비주얼과 약간의 비린내를 잡아야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 때 생각해 낸 게 바로 한국화에서 곰팡이를 잡으려고 할 때 사용하였던 송진이다. 송진가루를 사용하자 비린내가 잡혔고 그 외 여러 가지 약초와 비법으로 3번에 걸쳐 간장을 달여 게장을 담그자 짠 맛이 줄었다. 그런 몇 년 동안의 실험과 노력이 대한민국 최초의 꽃게장 담그는 특허로 이어진 거다. 

     “1년여를 사는 꽃게는 암게 한 마리가 130만개에서 450만개의 알을 포란합니다. 알을 밴 암게를 금어기에 잡는 것 또한 어민이거든요. 의식구조부터 바꿔야 합니다. 수산물 고갈이라든니 어장 축소 문제에 대해서 어민의 자식이자 수산인으로서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멀리보고 자신을 희생하여야 길이 생기지요.” 
     김 대표는 기업인은 다른 사람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예측하지 않을 길을 찾아갈 때 조금 더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수산물은 앞으로의 미래가 뻔히 보입니다. 자원이 고갈되는 건 물어보나 마나이지요. 꽃게도 물론이지만 조기, 박대 등등 점점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또 ‘그림은 마음의 양식이지만 수산업은 생명’이라고 했다. 식품은 그냥 먹거리가 아니라 인간을 이루는 정신 부분까지 식품이 좌우할 정도이며, 그래서 식품은 곧 생명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의 걱정처럼 식품 중에서도 바다에서 나오는 천연 식품이 고갈되는 건 인류의 패망을 가져올 정도의 대사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수입 수산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방사선 오염이라든지 간척사업 등으로 바다가 줄어들고 연안오염은 심화되는데, 수산업은 내일이 안개속이다. 공단에만 목매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채명룡 기자​

     

    채명룡 / 2019.05.08 10: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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